계약(법률행위)의 무효와 취소
1. 무효와 취소의 원인과 차이점
(1) 무효와 취소의 원인
계약에 흠이 있어서 완전한 효력을 가질 수 없는 경우에 민법은 이를 무효로 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것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무효로 하고 어떤 경우에 취소할 수 있는 것으로 할 것인가에 관하여는 절대적인 원칙이 없고 입법정책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법질서 전체의 이상에 비추어 개개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당연히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객관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무효로 하지만 흠이 주관적인 사유이고 효력의 부인을 특정인의 의사에 의존시켜도 무방할 경우에는 일단 유효한 것으로 하고 취소할 수 있는 것으로 한다. 그러나 주관적 사유이더라도 유효로 할 수 없는 흠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무효로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민법은 반사회질서의 계약(제103조), 불공정한 계약(제104조), 강행법규에 위반하는 계약(제105조), 진의아닌 의사표시(제107조 제1항 단서), 통정허위표시(제108조) 등에서 무효로 규정하고 있다.
진의아닌 의사표시, 통정허위표시 등은 주관적 사유의 흠이 존재하는 경우이면서도 비진의에 인식의 확실성 때문에 무효로 한다. 법이론에 따라 당연히 무효로 보아야 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의사무능력자의 행위, 목적이 불능인 행위, 내용이 불확정적인 행위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행위무능력자의 행위(제5조, 제10조, 제13조), 착오로 인한 행위(제109조), 사기나 강박에 의한 행위(제110조) 등은 취소할 수 있는 행위로 하고 있다.
(2) 무효와 취소의 차이점
① 효력의 확정성여부
무효는 처음부터 당연히 행위의 효력이 없는 것이므로 효력의 부인을 위하여 특정인의 적극적인 행위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취소할 수 있는 행위는 취소권자라는 특정인이 취소를 위한 적극적인 행위(취소의 의사표시)가 있어야만 비로소 처음으로 소급하여 계약이 무효가 되며 그 취소가 있기까지는 유효한 것으로 다루어진다.
그러므로 무효인 행위는 추인이나 시간의 경과에 의해서도 그 무효가 치유될 수 없지만 취소할 수 있는 행위는 추인에 의하여 유효한 것으로 확정되며 일정한 기간(제척기간)이 경과하면 계약의 흠이 치유되어 취소할 수가 없게 되기도 한다.
② 효력의 절대성여부
무효는 제3자에 대하여 선의, 악의를 불문하고 절대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법이 무효임을 선언한 이상 제3자가 이를 유효로 믿었다고 하여 보호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취소할 수 있는 행위는 일단 유효한 행위로 법이 인정한 상태이므로 이를 신뢰한 선의의 제3자에게 취소하였음을 주장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③ 원인의 특정성여부
무효인 행위는 그 유형을 획일화할 수 없다. 유효요건을 결여한 행위는 모두 무효가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소할 수 있는 행위는 유효요건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법에 의하여 일단 유효한 것으로 인정한 행위이므로 그 원인유형은 법에 규정된 경우에 한정된다. 민법은 취소할 수 있는 행위로서 무능력자의 행위(제5조, 제10조, 제13조), 착오에 의한 행위(제109조), 사기 또는 강박에 의한 행위(제110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3) 행위무능력자의 법률행위의 무효와 취소(무효와 취소의 이중효)
행위무능력자가 법률행위를 하였으나 동시에 의사무능력자인 경우에는 무능력자는 행위무능력을 원인으로 한 취소와 의사무능력을 원인으로 한 무효를 각각 주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갖는다.
이중효의 인정설은 무효나 취소는 모두 법률행위의 효과를 부인하는 것으로써 표의자를 보호하려는 제도이므로 표의자에게 선택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그러나 취소인정설은 의사무능력자이더라도 취소의 효력만 인정하면서, 이중효의 인정에 대하여 첫째, 의사무능력자에게 무효를 인정하면 무능력자와 상대방의 이익조화를 위하여 무능력자를 정형화한 민법상 무능력자제도가 무시되고, 둘째, 무효는 절대적 무효이므로 상대방의 무효주장이 있으면 무능력자에게 유리한 법률행위도 유지가 어렵게 되어 무능력자제도의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취소인정설도 행위무능력자가 아닌 의사무능력자는 무효가 인정될 수 있고 금치산선고를 받은 의사무능력자는 취소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형평에 어긋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의사표시는 자유의사에 기초하여야만 법률효과를 발생시킬 의의를 가지는 것이며, 의사능력의 결여는 곧 객관적인 법률요건의 결여이므로 당연히 무효가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 법리상 당연하다. 또한 당연무효인 행위까지도 무능력자의 일방만이 유리하도록 해석하여야 할 필요성은 없다고 할 것이다. 무능력자의 보호목적은 적극적으로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미숙한 판단으로 인한 불이익이 발생되지 않도록 하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무능력자상대방보호제도에서도 선의의 상대방에게 계약의 철회권을 인정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2. 계약의 무효
(1) 무효의 의의와 원칙
① 무효의 의의
계약의 무효라 함은 계약이 성립한 처음부터 법률상 당연히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계약의 무효는 계약의 불성립(부존재)이나 계약의 효력이 불확정(미정)인 것과 구별된다. 계약의 불성립(부존재)은 계약이 성립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성립되지 않는 것을 말하며 불확정(미정)은 정지조건부 계약처럼 계약이 성립은 하였지만 그 효과가 발생하느냐의 여부는 확정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② 무효의 원칙
(a) 절대적 무효의 원칙
무효임을 누구에게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을 절대적 무효라고 한다. 무효는 법이 처음부터 행위의 효력을 부인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법의 적용에 따른 결과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무효는 절대적 효력을 갖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선의의 제3자에 대하여 무효를 주장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진의아닌 의사표시 또는 허위표시에 있어서 무효를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특정인에 대하여서는 무효를 주장할 수 없는 무효를 상대적 무효라고 한다.
(b) 당연무효의 원칙
특별한 행위나 절차를 밟지 않아도 법률상 당연히 무효로 되는 것을 당연무효라고 한다. 무효는 법이 처음부터 행위의 효력을 부인한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행위나 절차에 의하여 행위를 무효화시킬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무효는 처음부터 당연히 무효의 효력을 갖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소송을 통하여 무효로 확인되어야만 무효로 인정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재판상 무효라고 한다. 재판상 무효는 단체법적 특징에 의하여 무효의 시점을 명확히 하고 효력을 획일화할 필요가 강한 경우에 나타난다. 회사설립의 무효(상법 제184조, 동법 제328조), 주주총회결의의 무효(상법 제380조) 등이 이에 속한다.
계약이 강행법규 위반 등으로 인하여 확정적인 무효로서 유효로 될 여지가 없는 것을 확정적 무효라고 하며, 현재의 계약상태로는 무효원인이 존재하여 무효이지만 장래 무효원인이 제거되어 소급적으로 유효화될 수 있는 것을 유동적 무효라고 한다. 예를 들면, 무권대리인이 행한 계약은 무효이지만 본인의 추인으로 유효화 될 수 있으므로 유동적 무효에 해당된다. 그러나 정지조건부 계약이나 시기부 계약은 자체에 무효원인이 없고 계약의 효력발생을 일정한 조건성취 또는 시기의 도래에 의지하는 것뿐이라는 점에서 유동적 무효와 구별된다.
판례를 살펴보면 ‘토지거래허가의 대상이 되는 토지의 소유권 등 권리를 이전 또는 설정하는 내용의 거래계약은 관할관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효력이 발생하고 허가를 받기 전에는 물권적 효력은 물론 채권적 효력도 발생하지 아니하여 무효’라고 하면서 ‘허가를 받기 전의 거래계약이 처음부터 허가를 배제하거나 잠탈하는 내용의 계약일 경우에는 확정적으로 무효로서 유효로 될 여지는 없으나, 이와 달리 허가받을 것을 전제로 한 거래계약일 경우에는 허가를 받을 때까지는 법률상 미완성의 법률행위로서 소유권의 이전 또는 설정에 관한 거래의 효력이 전혀 발생하지 않음은 위의 확정적 무효와 다를 바 없지만 일단 허가를 받으면 그 계약은 소급하여 유효한 계약이 되고 이와 달리 불허가가 된 때에는 무효로 확정되므로 허가를 받기까지는 유동적 무효의 상태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하고 있다(대판 1991.12.24. 90다12243). 유동적 무효의 상태에 있는 거래계약의 당사자는 상대방이 그 거래계약의 효력이 완성되도록 노력하지 아니하였음을 이유로 해제할 수 없으며 허가구역지정해제 등이 된 때에는 그 전에 확정적 무효가 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확정적으로 유효하게 된다(대판 1999.6.17. 98다40459 참조).
(c) 전부무효의 원칙
무효의 원인이 존재하는 경우에 계약내용의 전부를 무효로 하는 것을 전부무효라고 한다. 계약내용의 일부에만 무효의 원인이 존재하여도 전부무효의 원칙에 의하여 전부를 무효로 한다.
계약의 일부에 무효원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부무효를 원칙으로 하는 것은 당사자가 나머지에 대한 계약의 성립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면, 매도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얼룩송아지 3마리의 매매계약이 체결되었으나 송아지가 2마리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원칙적으로 3마리 매매계약은 전부무효이다. 2마리에 대한 매매계약은 체결된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머지만 가지고도 계약을 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나머지 부분을 유효로 인정하고 있다(일부무효의 법리 ; 제137조 참조).
(2) 무효인 계약의 효력
무효인 계약은 그 내용에 따른 법률효과가 처음부터 생기지 않으므로 그에 따른 채권채무관계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형상 발생되어 있는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없고 이미 이행된 부분에 대하여는 반환하여야 한다. 이미 이행되어 취득된 재화는 법률상 원인없이 취득된 것이므로 부당이득의 반환법리에 의한다(제741조).
계약의 무효는 원칙적으로 모든 자에 대하여 그 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절대적 무효). 그러나 계약에 존재하는 흠이 무효로 할 수 밖에 없는 흠이지만 당사자의 주관적 요소이기 때문에 제3자의 보호가 요구되는 때에는 예외적으로 무효의 효과를 일정한 제3자에 대해서 주장할 수 없는 것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상대적 무효 ; 제107조 제2항, 제108조 제2항).
(3) 무효행위의 전환
계약이 그 자체로서는 무효이지만 그것이 다른 계약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경우에 그 무효행위에 대하여 다른 계약으로서의 효과를 발생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무효행위의 전환’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전세권설정계약으로서는 무효이나 임대차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경우, 어음행위로서는 무효이지만 소비대차계약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경우에 있어서 임대차나 소비대차의 효력을 인정하는 형태를 말한다.
일부무효의 법리와는 구분된다. 일무무효의 법리는 전부를 무효로 하여야 하지만 당사자의 의도를 고려하여 나머지를 가지고 유효한 계약으로 하는 것이고, 무효행위의 전환은 계약자체가 이미 무효이지만 당사자의 의도를 고려하여 다른 계약을 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효행위의 전환은 무효인 계약행위의 요소들을 당사자가 의도하는 다른 계약으로 재구성하여 유효화하는 것인 반면에, 일부무효는 계약의 일부를 제거하여 나머지만 가지고 그대로 유효한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계약의 동일성이 유지되는가의 문제로 접근하면 확연히 구분된다.
예를 들면, 전세권설정계약이 등기가 불가능하여 무효인 경우에 미등기전세계약으로 전환된다면(무효행위의 전환) 전세권설정계약 자체는 무효이며, 미등기전세계약이라는 계약행위를 한 것으로 하여 유효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물건의 일부가 원시적 불능으로 나머지만 매매하기로 되는 경우에(일무무효) 매매계약 자체는 유효하고 급부의 양만 감소되는 내용의 계약이 되는 것이다.
민법은 ‘무효인 법률행위가 다른 법률행위의 요건을 구비하고 당사자가 그 무효를 알았더라면 다른 법률행위를 하는 것을 의욕하였으리라고 인정될 때에는 다른 법률행위로서 효력을 가진다(제138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효행위의 전환이 인정되려면 무효인 계약이 다른 계약의 요건을 갖추고 있고 당사자가 그 무효를 알았더라면 다른 계약을 하는 것을 의욕하였으리라는 것이 인정되어야만 한다.
무효행위가 요식행위이든 불요식행위이든 이를 불요식행위로 전환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무효행위가 요식행위로 전환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의문이 있다. 어음행위나 수표행위 등 일정한 형식 자체를 필요로 하는 요식행위로는 전환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단지 확정적인 의사를 서면으로 나타내게 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이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혼인 외의 출생자를 혼인 중의 출생자로 신고한 경우, 양자를 친생자로 출생신고를 한 경우 등은 각각 認知 또는 입양으로서의 신고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민법은 무효행위의 전환을 인정하는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기도 하다(법률상의 전환). 예를 들면, 계약에 있어서 연착된 승낙 또는 변경된 승낙은 승낙으로서는 무효이나 새로운 청약으로 인정된다(제530조, 제534조). 단독행위에 있어서도 방식에 흠결이 있는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을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으로 보는 규정(제1071조)을 두고 있다.
(4) 무효행위의 추인
무효행위는 계약에 따른 법률효과가 무효의 원인에 의하여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된 것이므로 그 계약을 추인하여 유효한 것으로 한다는 것은 법리상 허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민법은 ‘무효인 법률행위는 추인하여도 그 효력이 생기지 않는다(제139조 본문)’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무효인 행위를 나중에 유효화 되기를 원하고 또한 무효원인이 없으며 제3자의 보호에도 지장이 없다면 사적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굳이 이를 무효로 하여 동일한 행위를 다시 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민법은 ‘당사자가 무효임을 알고 추인한 때에는 새로운 행위를 한 것으로 본다(제139조 단서)’고 규정하였다.
무효행위를 추인하는 경우에 ‘새로운 행위를 한 것으로 본다’는 것은 이미 행해진 무효행위가 새로운 행위로 인정된다는 것이 아니고 추인행위 자체를 새로운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추인은 이미 행해진 무효행위와 동일한 내용을 가질 수도 있지만 무효의 요소가 제거된 새로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추인을 할 수 있는 자는 무효인 행위를 한 자로서 그 행위가 무효임을 알고서 추인행위를 하여야 한다. 추인행위도 법률행위이므로 ‘무효행위’에 대하여 추인을 하는 의사표시가 존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약의 경우에는 일단 계약이 성립한 후에는 무효원인이 있는 당사자만의 추인으로는 그 효력이 생기지 않고 상대방의 추인도 있어야 한다. 결국 양방 당사자의 추인행위(청약과 승낙)가 있으면 새로운 계약이 성립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무효행위가 단독행위일 때에는 그 행위자만이 추인하면 된다.
무효행위가 추인된 때에는 새로운 행위로서의 효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소급효는 발생되지 않고 추인한 때부터 효력이 발생될 것이다. 예를 들면, 통정허위표시로 체결된 매매(가장매매)의 당사자가 추인하면 추인한 때에 유효한 매매가 체결된 것으로 인정될 뿐이다. 다만 당사자간에만 채권적 소급효를 인정하는 것은 제3자를 해하지 않으므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추인으로 인하여 새로운 행위로 인정되었어도 여전히 무효원인이 잔존하고 있다면 역시 무효가 될 것은 당연하다.
3. 계약의 취소
(1) 취소의 의의
취소란 계약의 효력요건상에 일정한 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유효히 성립한 계약의 효력을 소급적으로 소멸시키는 일방적 의사표시를 말하며.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지위를 취소권이라고 한다. 취소권은 권리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에 의하여 권리변동을 가져오므로 일종의 형성권에 속한다.
취소할 수 있는 계약은 일단 유효하다는 점에서 무효인 계약과 구별되고 계약에 효력요건상의 흠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조건이나 기한있는 계약과 다르다. 취소할 수 있는 계약은 취소하면 처음부터 무효였던 것으로 확정되고 추인을 하거나 취소권이 소멸되면 비로소 처음부터 완전히 유효하였던 것으로 확정된다.
해제도 유효한 계약의 효력을 소급적으로 소멸시키는 일방적 의사표시라는 점에서 취소와 동일하다. 그러나 취소는 의사표시의 효력요건상에 일정한 흠이 있음을 그 원인으로 하는데 반하여 해제는 흠이 없는 계약에 대해서 당사자의 특약이나 채무불이행 등을 원인으로 한다는 점 등에서 구별된다. 그러므로 해제문제는 계약에 의하여 발생된 채권채무관계가 이행되는 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것이지만 취소문제는 그 외에 단독행위, 물권적 합의 등 의사표시를 요소로 하는 모든 법률행위에서 발생될 수 있다.
민법은 제140조 이하에서 취소에 관한 일반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이 규정들은 당사자의 행위무능력 및 의사표시의 흠을 원인으로 하는 취소에 대하여만 적용된다. 이를 민법상 본래 의미의 취소라고 한다.
민법에서는 본래 의미의 취소 이외에도 취소의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러한 경우의 취소를 본래 의미의 취소와 구별하여 ‘특수한 취소’라고 한다. 특수한 취소의 유형은 그 특징에 따라 公法상의 취소, 완전행위의 취소, 신분행위의 취소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공법상의 취소는 국가기관의 행위(재판 또는 행정행위 등)를 취소하는 것으로 사인의 계약 등 법률행위가 취소되는 경우와 구별된다. 한정치산선고 또는 금치산선고의 취소(제11조, 제14조), 실종선고의 취소(제29조), 법인설립허가의 취소(제38조) 등을 들 수 있다. 완전행위의 취소는 계약 등 법률행위에 효력요건상에 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취소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민법은 완전행위에 대하여도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는 것으로서 채권자취소권에 의한 사해행위의 취소(제406조), 부부간의 계약의 취소(제828조)를 규정하고 있다. 신분행위의 취소는 가족법상의 신분행위가 재산행위와는 달리 그 당사자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하므로 민법은 신분행위에 합당한 취소요건 및 방법과 효력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 혼인의 취소(제816조 이하 참조), 이혼의 취소(제838조) 등이 이에 해당한다.
(2) 취소권자
취소할 수 있는 계약은 일단 유효한 법률행위이면서도 무효화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계약을 무효로 할 것인가(취소)의 여부를 결정할 주체(취소권자)가 존재하게 된다. 민법은 취소할 수 있는 행위에 관한 규정과 별도로 취소권자를 열거하여 규정하고 있다(제140조).
① 무능력자
미성년자, 한정치산자, 금치산자 등 무능력자는 자기가 한 취소할 수 있는 행위를 단독으로 취소할 수 있다.
취소권의 행사도 법률행위의 일종이므로 원칙적으로는 무능력자가 단독으로 취소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법은 무능력자 자기가 한 행위만은 단독으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무능력자가 행한 행위를 신속히 취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불안정한 법률관계를 신속하게 해소하려는 규정이라고 볼 것이다.
② 하자있는 의사표시를 한 자
하자있는 의사표시를 한 자(사기나 강박 또는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를 한 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 하자있는 의사표시란 일반적으로 사기 또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만을 말한다. 그러나 하자있는 의사표시를 사기 또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라고 이해하는 것은 의사와 표시가 불일치된 경우와 구분하여 흠있는 의사표시의 법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반드시 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만이 하자있는 의사표시라고 용어를 확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하는 하자있는 의사표시는 넓은 의미로 보면 ‘의사표시의 흠을 원인으로 취소할 수 있는 경우’라고 이해될 수 있기에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를 한 자도 이 규정에서 포함한 것으로 본다.
③ 대리인
무능력자나 하자있는 의사표시를 한 자의 법정대리인뿐만 아니라 임의대리인도 모두 포함된다. 법정대리인은 법규정에 의하여 본인의 권리를 대리할 수 있으므로 당연히 권한범위 내에서 취소권을 대리하여 행사할 수 있다.
임의대리인의 경우에는 본인으로부터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수여받은 경우에 한하여 취소권을 대리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임의대리인의 대리행위에 취소원인이 있는 경우에도 발생된 취소권은 대리행위의 효력귀속에 따라 그 취소권도 직접 본인에게 귀속되므로 임의대리인이 그 대리행위를 취소하려면 본인으로부터 다시 그 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수여받아야만 한다.
④ 승계인
취소권자로서 승계인이란 무능력자나 하자있는 의사표시를 한 자로부터 취소권을 승계한 자를 말한다. 포괄승계인뿐만 아니라 특정승계인도 취소권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특정승계의 경우에 취소권만의 승계는 인정되지 않고 취소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보호하려고 하는 지위의 승계가 있는 경우에만 취소권자가 될 수 있다. 취소권은 일정한 권리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그 권리변동의 형성력을 가지는 지위이므로 취소권만의 이전은 법리상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3) 취소의 방법과 효력
취소권은 형성권이므로 그 행사방법은 권리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에 의한다. 이 경우에 상대방이 확정되어 있으면 취소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다수인 때에는 그 전원에 대하여 취소의 의사표시를 하여야 한다. 취소의 의사표시를 하는 데는 특별한 형식을 요하지 아니한다.
취소한 계약은 처음부터 무효인 것으로 본다(제142조). 그러므로 그 효과는 원칙적으로 무효인 경우와 동일하다. 무능력을 원인으로 하는 경우에는 누구에 대하여서도 취소를 주장할 수 있다(절대적 효력). 그러나 착오, 사기 또는 강박을 원인으로 하는 의사표시를 취소한 때에는 이를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제109조 제2항, 제110조 제3항 참조).
계약이 가분적이거나 그 목적물의 일부가 특정될 수 있고 그 나머지 부분이라도 이를 유지하려는 당사자의 가정적 의사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일부무효의 법리(제137조)를 유추하여 그 일부만의 취소도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대판 1999.3.26. 98다56607 참조).
계약이 취소되면 그 계약내용에 따라 발생된 당사자간의 일정한 채권채무관계는 이행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나 취소전에 이미 이행한 것이 있을 때에는 급부를 받은 당사자는 이를 반환하여야 한다. 반환의 근거는 그 취득이 계약이 취소됨으로 말미암아 법률상 원인없이 이득을 취한 것으로 부당이득(제741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행된 재화의 반환범위는 부당이득반환법리에 의하여야 한다(제747조, 제748조). 그러나 민법은 예외적으로 무능력자에 관하여만 ‘그 행위로 인하여 받은 이익이 현존하는 한도에서 상환할 책임이 있다(제141조 단서)’고 규정하고 있다. 이익의 현존은 추정되므로 이익이 현존하지 않는다는 입증은 무능력자측에서 하여야 한다.
(4) 취소할 수 있는 행위의 추인
취소할 수 있는 계약의 추인은 그 행위를 취소하지 않겠다는 취소권포기의 의사표시를 말한다. 추인을 하면 계약은 완전히 유효한 것으로 확정된다. 추인의 방법은 취소의 방법과 동일하다. 특별한 방식을 요하지 아니하고 추인권자의 일방적 의사표시가 상대방에 도달하므로써 효력이 생긴다.
추인행위의 본질은 취소권의 포기행위이기 때문에 추인을 할 수 있는 자는 당연히 취소를 할 수 있는 자이다(제143조 제1항). 그러나 추인은 취소의 원인이 종료된 후에 하여야 한다(제144조 제1항). 무능력자는 능력자가 된 후에 추인행위를 할 수 있으며 착오, 사기 또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를 한 자는 착오, 사기 또는 강박의 상태를 벗어난 후가 아니면 추인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않고 한 추인은 무효이다. 그러나 무능력자(금치산자는 제외)가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서 추인을 하거나 법정대리인이 추인하는 것은 가능하다. 추인행위도 법률행위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취소할 수 있는 행위의 추인은 그 행위가 취소할 수 있는 것임을 인식한 상태에서 추인행위를 하여야 한다. 추인은 취소권을 포기한다는 의사표시이므로 당연히 취소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지 않는 한 추인행위가 있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취소할 수 있는 행위에 의하여 성립된 채무임을 모르고 채무승인을 하거나 화해청약을 하는 경우는 추인으로 인정될 수 없다.
(5) 법정추인제도
① 법정추인의 의의
추인은 명시적 의사표시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묵시적으로 할 수도 있으므로 실제에 있어서는 추인의 유무가 불분명하여 법률관계의 불안정이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민법은 추인의 의사가 있는 것으로 추측할 만한 일정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추인을 한 것으로 간주하여 상대방을 보호하고 있다. 이것을 ‘법정추인’이라고 한다.
법정추인제도는 취소원인이 종료하여 취소는 물론 추인도 할 수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의를 보류하지 아니한 채 추인으로 볼 수 있는 객관적 행위를 취소권자가 하였다는 점에 기초한다. 취소권자가 추인여부를 명확히 하지 아니한 채 객관적으로 추인의 의사표시를 한 것과 다름없는 행위를 하였다면 그 행위를 통하여 추인의 의사를 실현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법정추인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행위유형은 추인의 의사를 실현하는 것으로 인정할 만한 취소권자의 행위유형이다(제145조 참조).
법정추인으로 인정되면 추인의 의사표시가 없더라도 당연히 추인한 것으로 본다(제145조 본문).
② 법정추인의 요건
법정추인이 되려면 법정추인사유가 취소의 원인이 종료한 후에 발생하여야 한다(제145조 본문). 법정추인은 취소권자가 추인행위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인의 의사표시없이 추인행위에 상당하는 사유를 발생시킨다는 점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능력자의 법정대리인 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은 무능력자는 추인행위가 가능하므로 취소원인(무능력)이 종료되기 전이라도 법정추인사유를 발생시킨 때에는 역시 법정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취소권자가 법정추인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면서도 이의를 보류한 때에는 법정추인이 되지 아니한다(제145조 단서). 취소권자가 이의를 보류한다는 것은 법정추인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면서도 이로써 추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사를 표현한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점은 사적자치의 원칙에 입각하여 추인권자의 의사를 우선하는 의미를 가진다.
민법은 법정추인으로 인정될 일정한 사유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여 규정하고 있다(제145조 제1호 내지 제6호). 법정된 각각의 사유는 취소권자의 행위로부터 추인의 의사를 객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취소권자의 행위사실이 존재할 것을 전제로 한다.
(a) 전부나 일부의 이행
취소할 수 있는 행위로부터 생긴 상대방의 채권에 관하여 취소권자가 채무를 이행한 경우뿐만 아니라 취소권자가 취득한 채권에 대한 상대방의 채무이행을 수령한 경우를 포함한다.
(b) 이행의 청구
취소할 수 있는 행위로부터 채권을 취득한 취소권자가 상대방에게 채무의 이행을 청구하는 경우에 한하여 법정추인이 될 수 있다. 취소할 수 있는 행위로부터 채권을 취득한 상대방이 취소권자에게 이행을 청구할 때에는 취소권자의 행위가 존재하지 않기에 법정추인이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c) 갱개
갱개란 일정한 채권채무관계를 소멸시키는 대신에 다른 채권채무관계를 발생시키는 내용의 계약유형을 말한다(제500조 내지 제505조 참조). 당사자(취소권자 포함)가 취소할 수 있는 행위에 의하여 발생된 채권채무관계를 소멸시키고 그에 갈음하여 다른 채권채무관계를 발생하게 하는 계약을 하였다면 취소권자가 취소할 의사가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d) 담보의 제공
취소할 수 있는 행위로부터 부담한 채무에 대하여 취소권자가 채무자로서 담보를 제공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취소권자가 취득한 채권에 대하여 상대방으로부터 담보의 제공을 받는 경우도 포함된다.
(e) 취소할 수 있는 행위로 취득한 권리의 전부나 일부의 양도
취소할 수 있는 행위로부터 취득한 권리의 전부나 일부를 취소권자가 양도하는 때에 한하여 법정추인이 될 수 있다. 취소할 수 있는 행위로부터 권리를 취득한 상대방이 그 권리의 전부나 일부를 양도하는 행위는 취소권자의 행위가 아니므로 법정추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f) 강제집행
취소할 수 있는 행위로부터 권리를 취득한 취소권자가 채권자로서 상대방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한 경우에는 법정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취소할 수 있는 행위로부터 권리를 취득한 상대방이 취소권자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한 경우에는 법정추인으로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취소할 수 있는 행위로부터 권리를 취득한 상대방이 취소권자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한 경우에도 취소권자가 소송상 이의를 주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지 않는 것이므로 법정추인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취소권의 행사는 소송상 주장될 의무가 없고 취소권자가 취소의 의사가 있는 경우에도 소송절차에 협조하지 않는 현실의 일반적인 법문화수준이 고려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소송상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것을 취소권자의 행위로 평가하여 법정추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부작위를 행위로 평가할 때에는 작위의무가 요구되는 법규정의 존재 또는 법문화의 형성이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6) 취소권의 단기소멸
취소권은 행사되거나 포기(추인)되는 경우 또는 법정추인에 의하여 소멸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멸원인만으로는 취소여부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법률관계의 장기적인 불확정상태가 지속되어 상대방의 지위가 극히 불안정하게 될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민법은 취소할 수 있는 행위에 의한 법률관계를 신속히 확정시키고자 취소권의 단기소멸기간을 규정하고 있다.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 내 또는 취소할 수 있는 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내에 행사하여야 한다(제146조). ‘추인할 수 있는 날’이란 취소의 원인이 종료한 때를 말한다. 위의 두 기간 중 어느 것이든지 먼저 만료하면 그 때에 취소권은 소멸한다.
취소권은 형성권으로서 법률관계의 불확정상태를 전제로 하기에 취소권소멸기간은 일정한 기간내에 취소권의 행사가 이루어지도록 강제하려는 제척기간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원은 그 기간의 경과여를 당사자의 주장에 관계없이 당연히 조사하여 고려하여야 하며(대판 1996.9.20. 96다25371), 소멸시효기간과는 달리 불행사의 사실상태라든가 기간진행의 중단도 고려될 필요가 없다.
취소권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된 부당이득반환청구권도 취소권과 같이 이 기간 내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취소권의 단기소멸기간은 불확정적인 법률관계의 안정을 위하여 마련한 제도일 뿐이며 취소되어 확정된 법률관계(부당이득관계)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법리상 타당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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