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차명계좌예금은 명의자가 주인
- 기준일 2009. 3. 19. -
차명으로 예금계좌를 개설할 경우 예금주는 돈의 실제 주인과 관계없이 예금명의자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이모씨(48·여)가 예금보험공사를 상대로 낸 예금반환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김모 씨는 지난 2006년 2월 부인과 함께 한 저축은행을 찾아가 본인과 부인 이모 씨의 명의로 계좌를 개설한 뒤 각각 4900만 원과 4200만 원을 예금했다.
그런데 7개월 후 이 은행은 도산했고, 이에 따라 예금보험공사는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예보는 두 계좌의 실질적 주인이 모두 남편 김 씨라고 보고, 전체 금액 9100만 원 가운데 김 씨에게만 한도 보장액 5천만 원을 지급했다.
이에 이 씨는 예금주인 자신에게 보험금을 줘야한다며 소송을 냈지만 이 씨는 1,2심 모두 패소했다.
재판부가 ▲예금거래신청서가 김 씨 명의로 작성된 점 ▲김 씨 도장이 거래인감으로 등록·사용된 점 ▲예금계좌 비밀번호가 김 씨의 다른 계좌 비밀번호가 동일한 점 ▲이자가 매월 김 씨 명의의 다른 계좌로 자동이체된 점 등에 비춰 김 씨가 예금주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하고, 그 사실이 예금계약서 등에 명확히 기재돼 있다면 예금명의자를 계약 당사자로 봐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유명무실하게 여겨졌던 금융실명제의 취지를 되살린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석준 대법원 공보관은 "그동안 금융거래 실상이 금융실명제의 취지를 온전히 살리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금융실명제 취지에 맞는 보다 투명한 거래 관행이 생길 것으로 본다"고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특히 그동안 임직원 차명계좌로 돈을 관리해 온 기업들의 암묵적 관행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임직원 명의 계좌에 대해 기업체가 예금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금명의자가 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경우 이를 저지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돈의 주인과 금융기관 사이에 예금명의자가 아닌 돈 주인을 예금주로 하기로 하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 경우에는 이같은 판례가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경우라도 금융기관과 그 임직원은 행정상 제재를 피할 수 없어 사실상 차명계좌 개설의 길은 가로막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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